1. 도(道)는 하나이다
滕文公 爲世子 將之楚 過宋而見孟子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
世子自楚反 復見孟子 孟子曰 世子 疑吾言乎 夫道一而已矣.
등문공이 세자일 때 초나라로 가는 도중에 송나라를 지나다 맹자를 만나 뵈었다.
맹자께서 성(性)의 선(善)함을 말씀하시되, 말씀마다 요순을 거론하셨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와 다시 맹자를 뵙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2-1. 친상(親喪)의 도리는 천자부터 서민까지 똑같다
然友之鄒 問於孟子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 固所自盡也 曾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등문공이 (세자일 때) 아버지 정공의 장례를 앞두고 연우라는 신하를 추땅에 보내 맹자에게 예법을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좋지 아니한가! 친상은 진실로 자신을 다 바쳐야 하는 것이니. 증자께서 말씀하시길, ‘살아서 섬기기를 예로써 하고, 죽어서 장례하기를 예로써 하며, 제사 지내기를 예로써 하면 효라 이를 수 있다’ 하셨으니, 내가 제후의 예는 아직 배우지 않았으나, 일찍이 듣기로는 (상주가) 3년상에 자소(아래를 꿰맨 삼베 옷)의 상복을 입고, (부모가 죽은 뒤 3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미음과 죽을 먹는 것은 위로는 천자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하은주) 3대가 공통이었다.”
2-2. 풀이 바람에 눕는 까닭(草尙之風)
謂然友曰 吾他日 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 父兄百官 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然友復之鄒 問孟子 孟子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 必偃 是在世子.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난 날에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고, 말타고 칼쓰기를 좋아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부형과 백관들이 내가 대사의 예(아버지 등정공의 장례)를 다하지 못할까 걱정하니 그대가 다시 맹자에게 가서 물어보고 와라”하였다. 연우가 다시 추땅에 와서 맹자에게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해한다. 다른 것을 가지고 말하지 않겠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이 죽으면 (세자는 모든 정사를 총재(재상)에게 (정사를) 위임하여 백관들이 총재의 명령을 듣게 한다.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은 흑빛이 되어 자리에 나가 곡을 하면 백관과 유사(하급 관리)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는 윗사람이 솔선수범하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무엇을) 좋아함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의 덕을 바람에 비유하고, 소인의 덕을 풀에 비유하는 것이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그리로 쏠린다’ 하셨으니, 이것은 세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3-1. 위부불인(爲富不仁) 위인불부(爲仁不富).
滕文公 問爲國 孟子曰 民事 不可緩也 詩云 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
民之爲道也 有恒産者 有恒心 無恒産者 無恒心 苟無恒心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是 罔民也 焉有仁人在位 罔民 而可爲也.
是故 賢君 必恭儉 禮下 取於民 有制.
陽虎曰 爲富 不仁矣 爲仁 不富矣.
등문공이 나라 다스림을 묻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의 일은 느슨히 할 수 없으니, 시경에 이르기를, ‘낮이면 가서 띠를 베어오고 밤이면 새끼 꼬아서, 빨리 그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이어야 다음해에 비로소 백곡을 파종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떳떳한 재산이 있는 자는 떳떳한 마음을 갖고, 떳떳한 재산이 없는 자는 떳떳한 마음이 없는 것이니,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살기 위해 남에 대하여) 간사하고 치사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죄에 빠지게 한 뒤에 그들을 처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입니다. 인인(仁人)이 그 지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질 하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이러므로 어진 임금은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며, 아랫사람을 예로 대하고, 백성으로부터 취함에 절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양호가 말하기를 ‘부자가 되려 하면 인하지 못하고, 인하고자 하면 부자가 못된다’하였습니다.
3-2. 떳떳한 재산(恒産)과 공평한 세금
夏后氏 五十而貢 殷人 七十而助 周人 百畝而徹 其實 皆什一也 徹者 徹也 助者 藉也.
龍子曰 治地 莫善於助 莫不善於貢 貢者 校數歲之中 以爲常 樂歲 粒米狼戾 多取之而不爲虐 則寡取之 凶年 糞其田而不足 則必取盈焉 爲民父母 使民盻盻然將終歲勤動 不得以養其父母 又稱貸而益之 使老稚 轉乎溝壑 惡在其爲民父母也. 夫世祿 滕固行之矣.
詩云 雨我公田 遂及我私 惟助 爲有公田 由此觀之 雖周 亦助也.
하후씨는 오십무(4방6척=1보(한걸음), 100보=1무)에 공(貢)법을 썼고, 은나라는 칠십무에 조(助)법을 썼고, 주나라는 백무에 철(徹)법을 썼습니다. 그 실제는 모두 십분의 일이니, 철은 통한다는 뜻이요, 조는 돕는다는 뜻입니다. (**공, 조, 철은 모두 세금제도를 말함)
용자가 말하기를 ‘토지를 다스림은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나쁜 것이 없습니다. 공법은 몇 년간의 중간치를 평균소출로 계산하니, 풍년에는 소출이 많아 세곡을 많이 거둬도 포악함이 되지 않음에도 적게 거두고, 흉년이 들 때는 밭에 거름으로 써도 부족한 판에 반드시 평균 세곡을 다 채워 거두니, (임금이)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으로 하여금 한스러운 눈빛으로 일년내내 노동하여도 그 부모를 봉양할 수 없게 만들고, 또 빚을 내어 보태어 세곡을 내게 만들어 그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굶어 죽어서 구덩이와 골짜기에 뒹굴게 한다면, 백성의 부모된 도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하였습니다.
세록(벼슬아치에게 주는 녹봉)에 관한 것은 등나라가 시행해온 바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우리 공전에 (먼저) 비를 내려 내 논에 흘러들게 한다’ 하였으니, 오직 조법(정전법에 의한 조세제도)에 공전이 있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관찰해보건대, 주나라도 또한 조법을 쓴 것입니다.
3-3. 학교(學校)의 기원
設爲庠序學校 以敎之 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 人倫 明於上 小民 親於下.
有王者起 必來取法 是爲王者師也.
詩云 周雖舊邦 其命維新 文王之謂也 子力行之 亦以新子之國.
상(庠), 서(序), 학(學), 교(校)를 설치하여 백성을 가르쳤으니, 상은 봉양한다는 뜻이요, 교는 가르친다는 뜻이요,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입니다. 하나라 때는 교라 하였고, 은나라 때는 서라 하였고, 주나라 때는 상이라 하였으며, 학은 삼대가 공통이었으니, 모두가 인륜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륜(오륜을 말한다)이란 윗사람이 밝으면(먼저 오륜을 행하면), 소민들이 아래에서 (윗사람과) 친해집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와서 이 법을 취할 것이니, 이는 왕자의 스승이 되는 바입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이나, 그 명은 새롭다(周雖舊邦 其命維新)’하였으니 이는 문왕(의 업적)을 이른 것입니다. 자께서 힘써 행하신다면 또한 임금의 나라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3-4. 인정(仁政)의 기본
使畢戰 問井地 孟子曰 子之君 將行仁政 選擇而使子 子必勉之 夫仁政 必自經界始 經界不正 井地不均 穀祿不平 是故 暴君汚吏 必慢其經界 經界旣正 分田制祿 可坐而定也.
등문공이 필전으로 하여금 정전법에 대해 묻게 하니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임금이 장차 인정을 행하시고자 그대를 뽑아 보내셨으니, 그대는 반드시 힘쓸지어다. 무릇 인정이란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다스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토지의 경계를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정전이 균등하지 못하고, 세곡과 녹봉이 공평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므로 폭군과 오리들은 반드시 경계를 다스리는 일을 태만이 하나니, 경계를 다스리는 것이 이미 바루어지면, 토지를 나누어주고 곡록을 제정해주는 일은 가만히 앉아서도 정해질 수 있는 것이다.”
4-1. 노력자(勞力者)와 노심자(勞心者)
然則治天下 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 如必自爲而後用之 是 率天下而路也 故 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 治人 勞力者 治於人 治於人者 食人 治人者 食於人 天下之通義也.
(진상이란 사람이 오직 농업만을 숭상하고 다른 백공(百工)의 직업을 천시하는 허행 학파를 칭찬하는 것을 맹자가 비판하자, 진상은 백공의 일은 (가장 중요한) 농사일을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자 맹자가 말한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어찌 홀로 밭갈며 또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대인(정치가)의 일이 있고, 소인(백성)이 하는 일이 있다. 또 한 사람의 몸에는 백공의 일이 다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데(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의식주 모두가 필요하다는 말) 만일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반드시 자기가 만들어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 사람을 모두 이끌고(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길을 다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이르기를, ‘혹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혹은 힘을 수고롭게 하나니,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지식 노동 등)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육체 노동 등)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 얻어 먹는 것이니, 이는 천하의 공통된 의리이다.
4-2. 성현은 밭을 갈지 않은 이유
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堯獨憂之 擧舜而敷治焉 舜 使益掌火 益 烈山澤以焚之 禽獸逃匿 禹疏九河 瀹濟漯而注諸海 決汝漢 排淮泗而注之江 然後 中國 可得而食也 當是時也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雖欲耕 得乎.
요의 시대에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 홍수가 멋대로 일어나 천하가 범람하니 밀림이 우거지고 짐승들이 번식하였다. 오곡이 자라지 못하고 짐승들이 사람들을 못살게 하니, 중국은 온통 짐승과 새발자국이 교차하는 땅이었다. 이때 요 임금이 홀로 이를 걱정하여 순 임금을 발탁해 천하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순은 익이라는 신하를 뽑아 불을 맡기셨더니 익은 산택을 불질러 짐승들을 내몰아 숨게 하였다. 이어 우를 기용하여 아홉 개의 강을 서로 통하게 하고 제수와 탑수를 뚫어 바다로 흘러들게 하였으며, 여수와 한수를 트고, 회수와 사수를 배수하여 장강으로 흘러들게 하였다. 이러한 후에 중국이 비로소 곡식을 먹을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우가 치수하기를 8년 동안에 세 번이나 자기 집 문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가 비록 밭을 갈고자 해도 밭 갈 새가 어디에 있겠느냐.
4-3. 오륜(五倫)의 시작
后稷 敎民稼穡 樹藝五穀 五穀熟而民人育 人之有道也 飽食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聖人 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放勳曰 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使自得之 又從而振德之 聖人之憂民 如此 而暇耕乎.
堯 以不得舜 爲己憂 舜 以不得禹皐陶 爲己憂 夫以百畝之不易 爲己憂者 農夫也.
分人以財 謂之惠 敎人以善 謂之忠 爲天下得人者 謂之仁 是故 以天下與人 易 爲天下得人 難.
후직이 백성들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오곡을 심고 가꾸게 하였다. 오곡이 잘 자람에 인민들이 잘 길러졌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도리가 있는데, 배 부르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하게 살 집만 있고 가르침이 없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성인이 이를 걱정하여 설을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다. 인륜이란 어버이와 자식 간에 친함이 있고(부자유친),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가 있고(군신유의),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고(부부유별), 어른가 어린이 사이에 차례가 있고(장유유서), 벗과 친구 사이에 믿음(붕우유신)이 있어야 하느니라. 방훈(요임금의 다른 이름)이 말씀하기를, ‘위로하고 오게 하며, 바로잡아주고 펴주며, 도와주고 거들어주니 스스로 (오륜을) 얻고 또 따라서 덕을 진작하리라’ 하시니, 성인이 백성을 걱정함이 이와 같은데, 어느 겨를에 밭을 갈겠는가.
요는 순을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으셨고, 순은 우와 고요를 얻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으셨으니, 백무의 밭이 다스려지지 못함을 자기 근심으로 삼는 자는 농부이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쳐 주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천하를 위해 인재가 일하게 하는 것(임금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능력있는 자에게 물려주는 것)을 인(仁)이라 이른다. 이러므로 천하로써 남에게 주기는 쉽고,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기는 어려운 것(세습하기는 쉬우나 능력있는 인재를 얻어 그 기업을 지키게 하는 일이 더 어렵다)이다.
4-4. 위대하도다, 요순이시여
孔子曰 大哉 堯之爲君 惟天爲大 惟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君哉 舜也 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 亦不用於耕耳.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노릇하심이여! 오직 하늘이 위대하거늘 요임금만이 이를 본받으셨도다. (그 위대함이) 크고 넓으나 백성들이 이를 알지 못함이라.(너무 위대하여 오히려 못 알아본다는 의미) 임금답도다, 순이여!
높고높으나 천하를 소유하고도 관여하지 않았다(우에게 임금자리를 선양하였다)‘ 하셨으니, 요와 순이 천하를 다스림에 어찌 그 마음을 쓰지 않은 바가 없으리오마는 또한 밭가는데는 쓰지 않으셨다.
(…)
4-5. 강한이탁지(江漢以濯之) 추양이폭지(秋陽以暴之)
昔者 孔子沒 三年之外 門人 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然後歸 子貢 反 築室於場 獨居三年然後歸 他日 子夏子張子游 以有若似聖人 欲以所事孔子 事之 彊曾子 曾子曰 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
옛날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다음 문인들이 짐을 챙겨 장차 집으로 돌아갈 적에 (여막에) 들어가서 자공에게 읍하고 서로를 향하여 통곡하여 모두 목이 쉰 연후에 돌아갔다. 자공은 다시 돌아와서 묘마당에 집을 짓고 홀로 삼년을 더 시묘한 뒤에 돌아갔다. 후일에 자하, 자장, 자유가 유약이 성인과 닮았다 하여 공자를 섬기던 예로 그를 받들고자 하며 증자에게도 이를 강요하였다. 이때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불가하오. (공자의 덕은) 강물에 씻고 가을 햇볕에 쪼여 말린 것 같이 희고도 희어 (거기에) 더할 것이 없다’ 하셨다.
4-6. 사물이 똑같지 않은 까닭
曰 夫物之不齊 物之情也 或相倍蓰 或相什伯 或相千萬 子比而同之 是 亂天下也 巨履小履同賈 人豈爲之哉 從許子之道 相率而爲僞者也 惡能治國家.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물이 똑같지 않음은 사물의 실정이다. 혹 물건의 값이 서로 배나 5배가 되며, 혹은 서로 10배나 백배가 되고, 혹은 천배 만배가 되기도 하거늘, 그대는 어찌 똑같이 비교하려 하는가.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짓이다. 만일 큰 신과 작은 신이 같은 값이라면 사람들이 어찌 신을 만들려 하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른다면 서로 이끌고 거짓을 하려 할 것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5-1. 유가와 묵가의 차이
徐子以告夷子 夷子曰 儒者之道 古之人 若保赤子 此言 何謂也 之則以爲愛無差等 施由親始. 徐子以告孟子 孟子曰 夫夷子 信以爲人之親其兄之子 爲若親其隣之赤子乎 彼有取爾也 赤子匍匐將入井 非赤子之罪也 且天之生物也 使之一本 而夷子 二本故也.
(**유가는 사랑을 베품에 구별이 있다는 별애(別愛)의 입장이었고, 묵가는 일체의 차별이 없는 겸애(兼愛)를 주창했다.) 서자가 이자(묵가의 한 사람)에게 (맹자의 말을) 전하자, 이자가 말했다. “‘유자의 도’에 ‘옛 사람이 갓난아이를 보호하듯이 한다’ 하였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생각한 즉 이는 사랑에는 차등이 없고, 사랑을 베품은 어버이로부터 말미암는다고 여기노라.” (즉 유가도 원래는 차별없는 사랑을 주장하지 않았느냐는 반박이다) 서자가 이 말을 맹자에게 전하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이자는 진실로 생각해보라. 사람이 그 형의 아들과 그 이웃의 아이 가운데 누구를 더 친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서경의 말을 자기 식으로 취한 것이니, 갓난아이가 기어서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갓난아이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또 하늘이 사물을 냄은 그 근본이 하나이게 하였거늘, 이자는 근본이 둘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그 부모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남의 부모보다 자기 부모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부합한다는 말로서, 이자가 근본이 둘이라는 것은 유가와 묵자 사이를 편리에 따라 왔다갔다는 하는 것을 힐난한 말. 쉽게 말하면 이자야, 너는 그럼 부모가 둘이냐는 식의 비난을 한 것이다)
5-2. 문명의 탄생
蓋上世 嘗有不葬其親者 其親死 則擧而委之於壑 他日過之 狐狸食之 蠅蚋姑嘬之 其顙有자 睨而不視 夫자也 非爲人자 中心 達於面目 蓋歸 反虆梩而掩之 掩之誠是也 則孝子仁人之掩其親 亦必有道矣.
徐子而告夷子 夷子憮然爲間曰 命之矣.
상고 시대에 일찍이 그 어버이를 장례하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 어버이가 죽자 들어다가 골짜기 구덩이에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여우와 이리가 죽은 부모의 시체를 뜯어먹고 파리와 등에가 들러붙어 빨아먹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이마에 땀이 흥건히 젖어서 힐끔거릴뿐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그 사람이 땀에 젖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땀에 젖은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엇이 얼굴로 올라와 그런 것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삼태기와 들것에 흙을 담아서 가져와 시신을 덮어서 가렸다. 시신을 묻어서 (짐승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가리는 것이 진실로 옳다면, 효자와 인인이 그 어버이를 엄폐하는 것(부모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것) 또한 반드시 그럴만한 도리가 있을 것이다.
서자가 이 말을 이자에게 전하자, 이자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말했다. “(맹자께서) 나를 가르쳐 주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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