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문공 장구 하편은 전체 10장으로 되어 있으며, 주로 ‘선비가 벼슬하는 도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대 유세가였던 맹자의 침튀기는 열변을 맛볼 수 있습니다.
1-1. 정당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
陳代曰 不見諸侯 宜若小然 今一見之 大則以王 小則以覇 且志 曰 枉尺而直尋 宜若可爲也.
孟子曰 昔 齊景公田 招虞人以旌 不至 將殺之 志士 不忘在溝壑 勇士 不忘喪其元 孔子 奚取焉 取非其招不往也 如不待其招而往 何哉. 且夫枉尺而直尋者 以利言也 如以利 則枉尋直尺而利 亦可爲與.
진대가 말하였다. “제후왕을 만나보지 않으심은 (지조를 지킴에) 사소한 일 같습니다. 이제 한 번 만나보시면 크게는 왕도를 펴게 함이요, 작게는 패도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또 옛 기록에 말하기를 ‘한 자를 굽혀 여덟 자(1尋=8尺)을 편다’ 하였으니, 마땅히 해볼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제경공이 사냥할 때에 려인(虞人. 사냥터 하급 관리)을 정(旌. 사냥할 때 대부를 부르는 깃발)으로 부르자 오지 않았다. 경공이 화가 나 그를 처형하려 한 적이 있었다. (공자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말씀하시기를 ) ‘지사는 시신이 구덩이와 골짜기에 던져짐을 잊지 않고(두려워 하지 않고), 용사는 그 머리가 달아나는 것을 잊지(두려워 하지) 않는다’ 하셨으니, 공자께서는 무엇을 취하셨겠는가? 정당한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음을 취하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선비가) 정당한 부름이 아닌데도 간다면 어떠하겠는가. 또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으로 말한 것이다. 만일 이로움으로써 한다면, 여덟 자를 굽혀서 한 자를 펴서 이롭기로 한다면 또한 그리 하겠는가.
1-2. 자기를 굽히는 자는 남을 바로잡지 못한다.
昔者 趙簡子使王良 與嬖奚乘 終日而不獲一禽 嬖奚反命曰天下之賤工也 或以告王良 良曰 請復之 彊而後可 一朝而獲十禽 嬖奚反命曰 天下之良工也. 簡子曰 我使掌與女乘 謂王良 良不可曰 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詩云 不失其馳 舍矢如破 我 不貫與小人乘 請辭.
御者 且羞與射者比 比而得禽獸 雖若丘陵 弗爲也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 枉己者 未有能直人者也.
옛날에 조간자(조나라의 실권자) 가 (뛰어난 말몰이꾼인) 왕량으로 하여금, 총신 해를 수레에 태우고 사냥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해는 종일토록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고 돌아와 복명하기를 ‘천하에 형편없는 말몰이꾼이었습니다’라고 왕량을 비난했다. 혹자가 이를 왕량에게 전하자, 왕량이 조간자에게 다시 한번 수레를 몰 것을 청하여 나중에 간신히 승낙을 받았다. (이번에는 해를 태우고) 하루 아침에 열 마리를 사냥하게 하자, 해가 돌아와 고하기를, ‘왕량은 천하에 뛰어난 말몰이꾼입니다’ 라고 칭찬했다. 조간자가 “내가 왕량으로하여금 너의 수레를 계속 몰게 해주겠다”고 하고 왕량에게 이를 명하자, 왕량이 거부하며 말하였다. “내가 (해를 태우고) 말과 수레 다루기를 규범대로 하였더니, 그는 하루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내가 수레를 부정한 방법으로 몰았더니 그는 하루 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습니다. <시경>에 ‘말몰이꾼이 말모는 법을 잃지 않으면, 사수는 명중하기를 격파하듯이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저런 소인과 함께 타고서는 (화살을) 관통케 할 수 없으니, 청컨대 사양하겠습니다.”고 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말모는 어자조차도 활을 쏘는 사수에게 아부하기를 부끄러워 해서, 아부해서 잡은 짐승이 비록 산더미 같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거늘, 만일 우리가(맹자 일행) 도를 굽혀 저들(제후)에게 굽힌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대의 생각이 지나쳤다. 자기 몸을 굽힌 자가 능히 남을 곧게 펴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2. 참다운 대장부
景春曰 公孫衍 張儀 豈不誠大丈夫哉 一怒而諸侯懼 安居而天下熄.
孟子曰 是焉得爲大丈夫乎 子未學禮乎 丈夫之冠也 父命之 女子之嫁也 母命之 往 送之門 戒之曰 往之女家 必敬必戒 無違夫子 以順爲正者 妾婦之道也.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경춘이 말하였다. “공손연과 장의(전국시대에 합종연횡책을 주장한 종횡가의 대표적 인물들임)는 어찌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한번 노함에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그들이 가만히 있으면 천하가 잠잠합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공손연과 장의) 어찌 대장부라 하리오.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는가? 남자가 관례(성인식)할 때는 부모가 명(가르침)하고, 여자가 시집갈 때는 어머니 명한다. 갈 때에 문에서 전송하면서 경계하기를 가르치기를, ‘네가 시집가서 반드시 공경하고 경계하여 남편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순종함을 정도로 삼는 것이야 첩부의 도리일 뿐이다.(공손연과 장의의 도는 장부가 아니라 첩부의 수준이라는 비판이다.)
(대장부는 누구인가?)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하며,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니, 부귀도 그 마음을 더럽히지 못하며, 빈천도 그 지조를 바꿔놓지 못하며, 권세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나니, 이런 이를 일컬어 대장부라 한다.”
3. 군자는 벼슬하되, 정도(正道)로 한다.
曰 士之失位也 猶諸侯之失國家也 禮曰 諸侯耕助 以供粢盛 夫人蠶繅 以爲衣服 犧牲不成 粢盛不潔 衣服不備 不敢以祭 惟士無田 則亦不祭 牲殺器皿衣服 不備 不敢以祭 則不敢以宴 亦不足弔乎.
出疆 必載質 何也.
曰 士之仕也 猶農夫之耕也 農夫豈爲出疆 舍其耒耜哉 曰 晉國 亦仕國也 未嘗聞仕如此其急 仕如此其急也 君子之難仕 何也. 曰 丈夫生而願爲之有室 女子生而願爲之有家 父母之心 人皆有志 不待父母之命 媒妁之言 鑽穴隙相窺 踰牆相從 則父母國人皆賤之 古之人 未嘗不欲仕也 又惡不由其道 不由其道而往者 與鑽穴隙之類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士)가 그 자리를 잃는 것은 마치 제후가 그 나라를 잃는 것과 같다. 예에 이르기를, ‘제후왕이 밭을 갈면 백성들이 도와서 기장을 바치고, 부인은 누에를 치고 실을 켜서 옷을 짓는다. 희생이 이뤄지지 못하고 기장이 정결하지 못하고 옷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감히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 선비가 (제사지낼) 밭이 없으면 또한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 하였다. 제물과 제사그릇과 제복이 갖추어지지 않아 감히 제사 지낼 수 없으면, 감히 제사 후 잔치도 열지 못하나니, 또한 (그런 선비는) 위로를 받아도 부족하지 않겠는가?”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밭을 가는 것과 같다. 농부가 어찌 농토를 떠나면서 쟁기와 보습을 버려두고 가겠는가?” 주소가 말하였다. “진나라가는 벼슬하기에 좋은 나라이나, 벼슬을 받기를 이와같이 급히 하였다(벼슬을 받고 싶어 안달한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습니다. 벼슬하기를 이처럼 급히 한다면, 군자가 벼슬하기를 어렵게 여기라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씀하셨다. “사내가 태어나면 장가가서 아내를 얻기를 바라며, 여자가 태어나면 시집 잘 가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 사람이라면 모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다. 부모의 영과 중매장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끼리) 구멍을 뚫어 틈새로 서로 엿보고 담장을 넘어 서로 쫓아다닌다면, 이는 부모와 나랏사람이 모두 천하게 여기는 바이다. 옛사람들이 일찍이 벼슬을 하고자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그 벼슬하는 정도(正道)를 따르지 않는 것을 미워하였으니, 그 벼슬하는 정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벼슬을 쫓아) 찾아다니는 것은 구멍을 뚫고 틈새로 통하는 부류들이 하는 짓과 같은 것이다.”
4. 공이 있는 자는 먹을 권리가 있다.
彭更問曰 後車數十乘 從者數百人 以傳食於諸侯 不以泰乎. 孟子曰 非其道 則一簞食 不可受於人 如其道 則舜受堯之天下 不以爲泰 子以爲泰乎.
曰 否 士無事而食 不可也.
曰 子不通功易事 以羨補不足 則農有餘粟 女有餘布 子如通之 則梓匠輪輿皆得食於子 於此有人焉 入則孝 出則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 而不得食於子 子何尊梓匠輪輿而輕爲仁義者哉.
曰 梓匠輪輿 其志將以求食也 君子之爲道也 其志亦將以求食與 曰 子何以其志爲哉 其有工於子 可食而食之矣 且子 食志乎 食功乎 曰食志.
曰 有人於此 毁瓦畫墁 其志將以求食也 則子食之乎 曰 否 曰 然則子非食志也 食功也.
팽갱이 물었다. “(선생님은) 뒤따르는 수레가 수십 대에 종자도 수백명이나 되이면서도 제후들을 전전하며 의식(衣食)을 구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라면 한 소쿠리의 밥도 남에게 받아먹어서는 안되지만, 만일 정도라면 순임금이 요임금에게 천하를 넘겨받고도 지나치다 여기지 않으시니, 그대는 이것을 지나치다고 여기는가?”
“아닙니다. (제 말씀은) 선비가 하는 일 없이 공짜밥을 먹는 것이 불가하다 하였습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만일 나라를 다스리는 자라면) 통공역사(通功易事•물건(功)을 유통(通)여 서로 쓰임(事)을 바꾼다(易)는 뜻. 물물교환, 분업, 노임제공 등의 의미)토록하여 (백성들이) 그 남는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지 않는다면, 농부는 쌀아 남아돌아도 옷을 구하지 못하고, 여인네는 옷감이 남아돌아도 쌀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통공역사를 잘하도록 하면, 목수와 수레공이 모두 필요한 것을 교환하여 의식을 해결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하며, 선왕의 도를 지키고, 후세의 학자를 기다리고(후세에 전수할 학문을 닦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대가 이 사람을 먹이지 않는다면(가시적인 공이 없다하여 의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그대는 어째서 목수와 수레공은 높이 여기고, 인의를 하는 자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인가?”
(팽갱이 말하였다) “목수와 수레공은 그 일하는 목적이 장차 밥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인 바, 그렇다면 군자가 도를 행하는 것도 또한 밥을 구하고자 하는 일이란 말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위정자로서) 어찌 그 뜻을 따지는가? 누구라도 그대에게 공(자기를 이롭게 해준 일, 성과)이 있으면, 먹여줄만하니까 먹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가지 물어보겠다.) 그대는 그 (하고자 하는) 뜻을 취하여 먹이는가? (그사람이 당신에게 이룬) 공을 취하여 먹이는가?” “저는 뜻을 취하여 먹이는 사람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기왓장을 부수고 담장을 훼손하여 놓고는(결과가 엉망이라는 말) 그렇게 한 뜻(목적)이 장차 밥(보상)을 구하고자 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대는 그에게 밥을 먹이겠는가?“ (팽경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대는 뜻을 보고 먹여준 것이 아니라, 공을 보고 먹여 준 것이다.”
7. 예가 아니면 만나지 않는다.
公孫丑問曰 不見諸侯何義 孟子曰 古者 不爲臣 不見.
段干木 踰垣而辟之 泄柳 閉門而不內 是皆已甚 迫 斯可以見矣.
陽貨欲見孔子而惡無禮 大夫有賜於士 不得受於其家 則往拜其門 陽貨矙孔子之亡也 而饋孔子蒸豚 孔子亦矙其亡也 而往拜之 當是時 陽貨先 豈得不見.
曾子曰 脅肩諂笑 病于夏畦 子路曰 未同而言 觀其色 赧赧然 非由之所知也 由是觀之 則君子之所養 可知已矣.
공손추가 물었다. “제후왕을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의입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신하가 되지 않으면 만나지 않았다.(사사로이 만나는 것은 사사로운 일을 도모할 뿐이니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단간목(진나라의 현인)은 담을 넘어 피하고, 설류(노나라의 현인)는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으니, 이 모두는 너무 심하다. (상대방이 만나보기를) 절박하게 원하면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양화는 공자가 찾아와주기를(벼슬을 청하기를) 바랬으나, 무례를 범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다. (당시에) 대부가 선비(士)에게 예물을 하사할 때, 선비가 마침 집에 없어 직접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대부의 집을 찾아가 그 문 앞에 절하는 예가 있었다. 양화가 (이 예를 기화로 하여) 공자가 집에 없을 때를 엿보아 가서 공자에게 삶은 돼지를 선물로 놓고 갔다. (그러자 역시 양화를 만나고 싶지 않은) 공자께서도 또한 양화가 집에 없는 틈을 엿보아 찾아가 절을 하셨다. 이때에 양화가 먼저 와서 만남의 예를 갖추었다면, 공자가 어찌 양화를 만나보지 않으셨겠는가.
증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깨를 수그리고 아첨하는 미소를 짓는 것이 (내게는) 한여름에 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힘들다’ 하셨다. 자로께서도 말하시기를, ‘뜻이 다른데 억지로 (같은 양) 말하는 자는 그 얼굴색을 보면 무안하여 붉어지기 일쑤다. 그러나 내가 알바는 아니다.(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군자가 기르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8. 옳은 일은 미루지 않는다.
戴盈之曰 什一 去關市之征 今玆未能 請輕之 以待來年然後已 何如.
孟子曰 今有人 日攘其鄰之鷄者 或告之曰 是非君子之道 曰 請損之 月攘一鷄 以待來年然後已.
如知其非義 斯速已矣 何待來年.
대영지가 말하였다. “10분의 1의 세제와 관문시장의 징세를 철폐하는 것은 금년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듯 합니다. 청컨대 세금을 경감하여 거두고 철폐하는 일을 내년을 기다려 한다면 어떻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사람이 있어 날마다 이웃집의 닭을 훔치거늘, 혹자가 그에게 ‘이는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하니 대답하기를 ‘그럼 수를 줄여서 한 달에 한 마리만 훔쳐먹다가 내년에 가서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이로다.
만일 의가 아님을 알고 있다면 속히 그만두어야 할 것이지, 어찌 내년을 기다리겠는가.
9-1. 공자가 <춘추>를 지은 이유
公都子曰 外人 皆稱夫子好辯 敢問何也 孟子曰 予豈好辯哉 予不得已也 天下之生 久矣 一治一亂. (…)
堯舜 旣沒 聖人之道衰 暴君代作 壞宮室以爲汚池 民無所安息 棄田以爲園囿 使民不得衣食 邪說暴行 又作 園囿汚池沛澤多而禽獸至 及紂之身 天下又大亂.(…)
世衰道微 邪說暴行 有作 臣弑其君者有之 子弑其父者有之.
孔子懼 作春秋 春秋 天子之事也 是故 孔子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有春秋乎.
공도자가 물었다. “외인들이 모두 선생님더러 변론을 좋아한다고 칭하니, 감히 묻겠습니다만, 그렇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찌 변론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내 부득이해서일 뿐이다. 천하에 인간(역사)이 오래되었는데, (모두가) 한 번 다스려지고 한번 어지러워졌다.”
(요임금 때 개간하고, 우왕이 치수한 사례(등문공 상편에 보임)를 열거하고 나서) 요순이 이미 돌아가시니 성인의 도가 쇠하여 폭군이 대대로 나와서 궁실을 무너뜨려 못쓰는 연못을 만드니 백성들이 편안히 쉴 곳이 없었고, 밭을 버려 동산(임금의 놀이터와 사냥터)을 만드니 백성들로 하여금 의식을 얻을 수 없게 하였으며,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위가 또한 일어나 동산과 연못과 습지가 많아짐에 짐승들이 모여들었으니, 이에 주왕때에 이르러 천하가 또한 크게 어지러워졌다. (…)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약해져서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동이 일어나 신하가 그 임금을 죽는 자가 있으며,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죽이는 자가 있었다.
공자께서 이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으시니, 춘추는 천자의 일을 말한 것이다. 이러므로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이며,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이다’ 하셨다.
9-2. 사람의 도리와 금수의 도리
聖王不作 諸侯放恣 處士橫議 楊朱墨翟之言 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楊氏 爲我 是無君也 墨氏 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 公明儀曰 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 率獸而食人也 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是 邪說誣民 充塞仁義也 仁義充塞 則率獸食人 人將相食.
성왕이 나오지 아니하여 제후가 방자하며 초야의 선비들이 멋대로 의론하여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묵적으로 돌아갔다. 양씨는 자기만을 위하니 이는 군주가 없는 것이요, 묵씨는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어버이가 없는 것이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이는 금수이다. 공명의가 말하기를, ‘푸줏간에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 살찐 말이 있음에도 백성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짓이다’하였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사라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사악한 설로 백성을 속여 인의가 펼쳐지는 것을 꽉 틀어막은 것이다. 인의가 틀어막혀지면 짐승을 내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다가 마침내는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게 할 것이다.
9-3. 내가 어찌 변설을 좋아하랴
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 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 聖人復起 不易吾言矣.
昔者 禹抑洪水而天下平 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詩云 戎狄是膺 荊舒是懲 則莫我敢承 無父無君 是周公所膺也.
我亦欲正人心 息邪說 距詖行 放淫辭 以承三聖者 豈好辯哉 予不得已也.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
내가 이를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호하고자 양묵을 막으며 부정한 말을 추방하며 사악할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악한 설은 그 마음에서 나와 그 일을 해치며, 그 일에서 나와 그 정치에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타나도 내 말을 바꾸시지 않을 것이다.
옛적에 우왕이 홍수를 다스리자 천하가 평해졌고, 주공이 이적을 겸병하고 맹수를 몰아내자 백성들이 편안하였고, 공자께서 <춘추>를 다 지으시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 하였다.
(…)
내 또한 인심을 바로잡아 사설을 종식시키며 잘못된 행실을 막으며 부정한 말을 추방하여 삼대의 성인(요순우, 문무주공, 공자)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지, 어찌 변론을 좋아해서이겠는가. 내가 부득이해서이다.
능히 양묵을 막는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을 따르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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